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이미 희생을 한 나타샤 로마노프가 단독 캐릭터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미 어벤져스 에이지오브울트론 때 부터 블랙위도우의 단독 작품은 논의가 되어 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심지어 코로나로 개봉을 1년이나 더 늦춘 후에야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블랙위도우는 아이언맨이나 토르 처럼 단독 캐릭터 작품이다. 그런데 이미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죽은 캐릭터라 이제서야 작품이 나온 것이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그 많은 어벤져스 작품들 속에서 우린 나타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원년 멤버임에도 아직까지 단독 작품이 없었다는게 더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나타샤 로마노프의 모든것을 보여주는 영화 '블랙위도우'
나타샤는 냉전시대에 탄생된 러시아 비밀 스파이 요원이다. 어렸을 적부터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인데, 미국의 쉴드와 대척점에 있는 조직의 멤버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조직이 만든 가정 속에서 길러졌고, 그녀가 아는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 모두 그저 훈련받은 요원들 중 한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임에는 틀림없었다.
'블랙위도우'는 이렇게 나타샤의 어린시절부터 보여주는데, 21년의 시간을 바로 점프하며 딱 소코비아 협정 후 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즉, 어벤져스는 해체되었고, 그녀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숨어 지내는 상황부터이다.
레드룸에서 길러진 그녀는 또다른 블랙위도우가 양성되는 그곳을 없애고 수장 드레이코브를 죽였지만, 그는 은밀히 활동하며 훨씬 많은 고아들을 스파이로 만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타샤는 숨어있는 레드룸을 찾기 위해 단서를 모으기 시작한다.
영화의 주된 메세지는 그녀를 만든 자를 향한 복수와 그녀가 돌아갈 가족이다. 그래서일까 제2의 가족인 어벤져스가 해체된 시기가 딱 블랙위도우의 진짜 이야기를 그리기 좋은 시점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화는 그녀의 모든것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완전하게 귀결 짓는데 온힘을 쏟는다.
여성감독만이 그릴 수 있는 블랙위도우의 이야기
영화 블랙위도우에는 남자 캐릭터라고는 나타샤의 아빠, 스파이 조직의 수장, 그리고 그녀에게 물건을 대주는 동료가 전부이다. 오로지 여성들로 채워진 이야기 속에서 우정과 사랑, 복수와 화해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봐온 액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포근한 분위기가 많이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어린 소녀를 미끼로 하여 적의 수장과 함께 죽인 그녀의 판단은 그녀를 평생 죄책감에 들게 했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소녀가 조종당하는 살인병기가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나타샤는 결국 희생자에게 눈물을 보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강한 상대를 이겨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용서하고 또한 자신도 용서를 받으면서, 영원히 반복될 수 있는 복수의 싹을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 본연의 모습에도 충실하지만 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주인공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죄책감에 대한 내용과 끝에 와서는 용서를 하고 구원을 받는 모습들은 확실히 다른 액션 영화들보다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스파이로서 겪는 신체적 훼손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해보면 단 한번도 언급된 적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잠깐 나온 대사이지만, 나타샤가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과 다르게 홀로 겪었을 자궁적출을 굳이 대사에 넣은건 분명 여성만이 말할 수 있는 스파이캐릭터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었나, 여성 히어로만이 겪어야 하는 신체적 고통들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블랙위도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족한 액션과 아쉬운 스파이 장르의 맛
한편 영화가 주는 느낌과 시선이 새롭게 다가오지만, 스파이 캐릭터의 영화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은 많이 부족해보였다.
스파이이기 때문에 과격한 육탄전 보다는 민첩한 스파이 활동이 부각되는 색다른 마블 영화가 될거라 기대했지만, 스케일 큰 액션과 맨몸으로 싸우는 장면들로 채워졌기에 블랙위도우 만의 매력이 퇴색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액션들도 인상적이지 않기에 이도 저도 아닌 수준의 액션을 소화하기에 바빠 보였다.
굳이 블랙위도우가 남성액션영화처럼 될 필요가 있었을까? 여성의 시선이 간단한 대사와 제스쳐에만 녹아들게 아니라 전면으로 나올 강단은 없던건지 모르겠다.
어벤져스 원년 멤버이자 튼튼한 팬덤을 거느린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로 단독 작품이 나오는 기회를 얻었다면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마블의 색다른 장르로 만들었을 수 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더구나 이 한편만이 그녀의 단독작품이기 때문이다.
뉴페이스 블랙위도우 플로렌스 퓨
미드 소마에서 시종일관 :( 이런 입모양으로 울상짓던 그녀가 멋진 스파이로 활약하는 모습이 꽤 괜찮았다. 비록 스칼렛요한슨처럼 얼굴과 몸매까지 남성들을 사로잡는 피지컬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점이 어떤 고정관념을 깼다고나 할까......
낮게 깔린 그녀의 음성과 매선운 눈매가 캐릭터와 잘 맞다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가짜 가족들 앞에서 그들에게 진심이었다며 10대 소녀처럼 울상짓는 모습이 쉽게 얼굴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참 오랜만에 마블의 타이틀 음악을 극장에서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원없이 영화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히어로들이 뛰어다니며 멋진 액션을 선사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특히 마블의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많다.
영화계에도 세계관이라는 트랜드를 만들어 영향을 주었고, 10년이 넘게 캐릭터들을 성장시키고 어셈블하는 초유의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이들과 멋지게 이별하는 방법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나타샤 로마노프에게 잃어버린 유년기를 다시 찾아주었고,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했으며, 그녀에겐 어벤져스가 마지막 가족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사실 절벽에서 떨어져 희생한 블랙위도우를 기릴 기회가 없었단 생각이 든다.
늦게나마 온전히 그녀를 이해하고, 이제 진짜로 이별할 수 있게 한 이번 작품은 그녀를 위한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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