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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감상/좋은 작품들

전쟁은 죽은자에게서만 끝난다 - 제로다크서티 Zero Dark Thirty

 

자정을 넘긴 30분. 제로 다크 서티


오사마 빈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 시간이며, 영화의 마지막 30분을 바로 여기에 바친다. 영화는 작전을 마치고서야 긴 숨을 고를 수 있게 만든다.


마야는 12년간의 CIA생활을 오로지 오사마빈라덴을 잡기 위해 바쳐왔다. 9.11 테러 이후 끊임없는 폭탄테러뿐만 아니라 동료의 죽음까지 겪은 그녀는 결국 마지막 확신에 찬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초반 긴 고문씬에서 느껴지듯 영화는 테러와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지독한 여정임을 암시한다.

 

 

처음 그녀의 등장은 고문 장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새로 발령받은 신참내기 요원이었다면, 살기 어린 눈으로 작전을 진행하는 마지막 모습은 절실하면서도 노련한 CIA 요원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작전 상황에서 100% 확신으로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용기는 그저 호기로운 용기가 아니라 10년 넘게 숙성된 질긴 집념의 결과였다.

 

감독의 전작인 '하트 로커'의 연장선에 있는 듯, 전쟁과 하나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삶에서, 죽여야 할 적들이 사라진 후의 밀려오는 건 성취감이 아닌 무너진 삶의 모습이었다. 일상에서 다시 묵묵히 전장으로 돌아가던 제임스(허트 로커 주인공)처럼 '제로다크서티'의 마야는 평생의 타깃을 제거한 후에야 오열을 한다.

 


압도적인 카리스카로 완벽한 CIA요원이 된 제시카 체스테인

 

주인공 마야를 연기한 제시카 체스테인은 '인터스텔라'에서도 똑 부러진 과학자의 모습을 보이며 유레카를 외쳤는데,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당찬 여성 CIA 요원으로서 영화 전체를 주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시카 외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데,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서 존 코너 역을 맡았던 제이슨 클라크, 쥬라기 월드에서 벨로시랩터를 조율하던 가오갤 크리스 프랫, 그리고 매번 민머리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마크 스트롱이 머리숱이 있는 어색한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제외한 남자들의 역할은 상당히 부수적인 면이 있다.

 

크리스 프랫

 


남자들의 세계를 꿰뚫는 케서린 비글로우의 시선

 

'폭풍 속으로'에서부터 눈여겨본 그녀의 작품세계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캐릭터의 심리에 동화되게 하는 많은 장치들을 영화에 심으며 절정이 해소되는 순간 우린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거대한 파도 속으로 페트릭스 웨이지를 보내주는 유타(키아누 리브스)의 마음이나, 멍하게 쇼핑카트를 끄는 폭파 전문가 제임스(제레미 레너)의 모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제로다크서티의 마야의 울음으로 우린 전쟁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끝은 결코 온전하지 못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폭풍속으로 (Point Break) (1991년작)

 

캐서린 비글로우가 그려내는 남성들의 전장 세계는 결코 부드럽지 않다. 영화는 작전의 현장감을 그대로 표현하며 스나이퍼들은 관객의 눈보다 한 박자 빠르게 적들을 사살해간다. 화려한 액션과 핸드헬드 카메라가 없이도 테러범을 잡기 위해 투입된 30분간의 작전은 그야말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짧지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준 마지막 시퀀스는 기존의 대테러 영화들과 다른 캐서린 비글로우 만의 색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두 시간 동안 쌓아놓은 주인공의 집념과 확신이 고스란히 작전 수행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승화가 된 것이다.

 


 

마야의 마지막 울음은 결국 전쟁이란 이기고 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님을 의미한다. 

 

결국 타깃은 제거되었으나 총상 없는 그녀의 영혼은 치유되지 못하고,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게 되었다. 

전쟁은 죽은 자에게서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