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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감상/좋은 작품들

비정한 비즈니스세계에서 꿈을 쏘아올리다 -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

 

 

타고났다는 건 축복일까?

버릴 수 없는 재능은 결국 켄 마일스를 르망 24 레이싱 경주로 이끈다.

 

전설의 이태리 명차 페라리와 대자본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 거대기업 포드와의 대결은 표면적인 타이틀일 뿐이었다. 실상 영화는 켄 마일스와 캐롤 셸비의 자동차를 향한 애정과 헌신, 그리고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전쟁영웅 켄 마일스는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자동차에 대한 애정과 레이서로서의 재능을 겸비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후 카 튜닝숍을 운영 중이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넉넉히 지내지 못하지만 항상 그를 지원해주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르망에 출전하지 못하고 아내와 술 한잔

 

'셸비 아메리칸'이라는 자동차 개조 수리 사업을 하는 캐롤 셸비는 한때 르망 24에서 페라리를 꺾고 우승을 했던 레이서 이기도 하다. 비록 심장 질환으로 자동차 사업가로만 활약을 하지만 최고의 레이서는 또 다른 최고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한 포드, 시동을 걸다

한편 196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포드가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포드사는 가장 많은 수의 자동차를 판매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들지 못한다는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당시 르망24르망 24 경주의 트로피를 쓸어갔던 이태리 페라리사에 인수 제안을 하지만 페라리의 자존심은 자본 앞에 굴복당하지 않았다. 이에 포드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기로 하고, 르망 24에서 페라리를 꺾기 위해 최고의 인재들을 모은다.

 포드 매니저 리아이코아 - 배우 존번설은 퍼니셔,베이비드라이버,워킹데드에서 터지는 섹시미가 여기서도 숨겨지지 않는다.

 

셸비와 켄의 콤비 플레이는 포드의 지원아래 GT40 MK II 모델을 완성한다. 오로지 자동차에 온몸을 던지는 켄 마일스의 열정은 혁혁한 성과를 내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페라리 vs 포드의 경쟁이라는 큰 그림 속에 포드 vs 포드의 이야기가 구성되는데, 특히 셸비와 부사장의 충돌은 단조로울 수 있는 레이싱 경기를 입체적으로 만들며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유발한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적절한 시점에 극적인 연출을 하는 재주는 영화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향하는 과정이 전혀 진부하지 않고, 치솟는 속도만큼 심장박동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레이싱 시퀀스는 분명 여느 자동차 경주 영화와는 달랐다.

 

현란한 카메라워크나 슬로모션은 줄이고 비교적 긴 템포로 레이싱 장면을 담아내다 보니 아스팔트 위의 긴박한 상황이 쉽게 파악이 되고, 자동차 안의 열기와 핸들을 잡은 레이서의 힘 또한 현장처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준 건 레이싱 결과가 아니라 켄 마일스의 선택의 순간이다.

 

신기록에 신기록을 더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롱테이크로 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고, 결국 기어를 내리는 찰나의 순간 켄 마일스는 레이서로서, 남편이자 아빠로서, 그리고 그를 믿어준 사람들의 친구로서 승리를 하는 순간이었다.

 

기어를 내려야 하는 때를 깨달은 켄 마일스의 인간적인 모습이 내게 큰 감동을 불러왔다.


1960년대 르망의 완벽 재연

영화는 1960대를 담기 위해 당시의 스포츠카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또한 르망24 레이싱의 현장감을 위해 정교한 CG가 동원되어 그 시대 경주장에 들어온 듯 완벽한 재현을 했다.

 

뿐만 아니라 포드 회장과 비비 부회장, 마케터 담당 리 아이어코카는 냉철한 비즈니스 세계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자본으로 포장된 포드의 자동차와 그 속에 담긴 순수한 심장이 대비를 이루며 레이싱 못지않은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셸비(맷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베일)

새로운 브로맨스 탄생

처음 영화 속 크리스찬베일의 어눌한 모습에서 그의 전작 '파이터'의 모습이 떠올라 베일 연기의 한계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실제 켄 마일스의 사진이 나오는 순간 크리스찬베일이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한 건지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켄을 연기한 크리스찬베일은 배역을 위해 20kg을 감량하고 켄 마일스 그 자체로 스크린에 모습을 보였고, 셸비 역의 맷 데이먼은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두 배우의 멋진 브로맨스를 완성했다.

 


7000 rpm에서 인생을 바라보다

 

영화에서 자동차의 한계로 묘사되는 7000 rpm은 자칫 차량 폭발로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7000 rpm

where everything fades.
When your seeing becomes weightless, just disappears.
And all that’s left is a body moving through space and time.
7000 RPM that’s where you meet it.
Can I ask you a question?
The only question that matters.
Who are you?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제야 난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완전히 자유로운 나를 느낄 수 있다.

 

그와 자동차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순간.

그 지점에 오니 차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켄 마일스에게 속도는 아마 이와 같았을 것 같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련하게 컨트롤하며 자신의 속도를 초월한다.

 

내 인생에서 7000 rpm에 도달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 순간 난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포드v페라리'는 명불허전 연기파 배우의 열연과 로건(울버린)의 장례식을 아주 숭고하게 치러줬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각색과 드라마틱한 연출로 당당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레이싱 영화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