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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소설 - 스토너 Stoner

 

 

스토너를 선택하게 된 건 정말 순간의 일이었다.

 

스티븐킹의 '욕망을파는집'을 다 읽은 후 서점에서 마감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고른, 정말 별 생각없이 초판본으로 발간한다는 카피문구 하나 때문에 구입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괜찮길래 초판본으로 나왔다는 걸 홍보하지 하는 생각이 컸고, 지금 돌이켜보면 이렇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처음인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놀라우리만치 평범한 이야기로 첫장부터 끝장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특별하고 위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정말 평론가의 말처럼 할 말이 너무 많아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스토너는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미국 중부지역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큰사람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시골환경에서 벗어나 대학을 가게 되고, 결국 교육자가 된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삶의 궤적을 일관된 모노톤으로 묘사하는데, 놀라운건 이 평범하기그지 없는 이야기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 인생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스토너의 일생에는 소위 리즈시절이라고 할만한 하이라이트가 없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심지어 우리가 실패라고 부를만한 인생의 경험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묵묵한 캐릭터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갑작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어지러운 나치 시대에 그는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를 교육자의 길로 이끈 멘토의 쓸쓸한 노년의 모습을 바라본다.

 

교육자가 되어서는 그의 신념으로 인해 동료와 평생토록 소모적인 전쟁을 치른다. 늦은 나이에 잠시 외도를 하며 일생에 한번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걸어온 길 속에는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우정과 사랑, 사회관계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는데, 매 순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작가 존윌리엄스의 세밀하고 정성어린 묘사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스토너가 마주한 상황들, 그의 심리, 상대방의 생각, 그들의 표정 속 진짜 마음, 그를 미치게 만드는 지엽적이지만 본질적인 요소들 어느 것 하나 허투로 넘기지 않고 디테일하면서도 유려하게 쓴 문장들을 읽다보면 도저히 멈출 수 가 없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은 스토너의 심정을 고스란히 내게 이전시켜버린다.

 


충실한 감정이입으로 내겐 고통 같았던 스토너 이야기

스토너에게는 안타까운 순간이 참 많았다. 딸과의 관계가 특히 그랬는데, 그는 딸 그레이스와 어렸을 적에 오붓한 시간을 종종 보내지만 평생 결혼생활을 저주하는 부인의 훼방으로 그레이스는 아주 보수적이고 숨막히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로 인해 학창시절엔 성적으로 문란해지고, 그저 집을 나오기 위해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며 바로 이어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는다. 이후 알콜 중독의 증세까지 보이는데, 스토너에겐 삶의 유일한 빛이었던 그녀가 그렇게 밖에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된다.

 

딸 그레이스의 성장을 보는건 내겐 고통과 같았다.

 

평생 친구인 고든핀치와 동료교수이자 상사가 되어버린 로맥스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일상같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반추하게 한다. 그리고 뜨겁게 타올랐던 짧은 사랑 캐서린과의 관계는 (비록 외도이지만) 스토너 인생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응원을 하게 만든다.

 

그 밖에도 크고 사소한 일들이 하나하나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마지막 챕터에서 그의 죽음의 순간이 길게 묘사된다. 그 시간동안 스토너의 아픔과 기쁨이 모두 상쇄되는 느낌이었다. 숭고한 마지막 순간으로 가는 길에 모든게 차분해지기까지 했다.

 

스토너는 마지막 순간 몇차례 되뇌이는 말이 있었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우린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사는가? 우린 스토너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의 인생을 평범하다고 해야할까? 삶이라는게, 스토너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어떤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일까?

 

마지막 순간 우린 후회로 가득할까 아니면 모든 짐을 내려놓듯 그동안의 염려와 걱정들이 사라지고 모든게 사소해보일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향해 간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부질없는 것에 눈물을 쏟고 있진 않을까?

 


어떤이는 스토너를 읽고 평범한 위대함을 논할 수 도 있고 또는 평범함 이하의 안타까운 인생을 말할 수 도 있겠다.

스토너는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큰 업적을 만들진 못했다.

 

오직 책 한권.

 

그는 직접 쓴 책을 마지막 순간 집으며 생을 마감한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평했을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소감의 글이 인상적이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로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삶이란게 누구도 평할 수 없는 나만의 고귀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결국 살면서 겪은 소모적인 투쟁과 쓰린 상처와 작은 기쁨들이 모두 나의 소중한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삶이 달라졌을지도 모를거라 생각하는 어떤 순간의 결정과 망설임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