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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너의 욕망을 채워주마 - 욕망을 파는 집 Needful Things

 

 

스티븐킹 소설에 푹 빠지기 시작한 건 최근에 나온 ‘잠자는 미녀들’부터이다. 즉, 제대로 읽어본 스티븐킹의 소설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소설보다는 영화로 접한 경우가 더 많았다. 다행히도 영화들은 내 취향에 딱 맞는 고전적인 호러 스타일이라 스티븐킹 원작의 영화들을 반기는 편이었다. 영화의 신뢰가 작가에 대한 신뢰로 옮겨지다 보니 점점 그의 작품을 소설로 접할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욕망을 파는 집 해외판 표지

 


욕망을 파는 상점, 영엽 시작

 

욕망을 파는 집은 9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으로 캐슬록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삼으며 크게는 가톨릭교와 침례교로 나뉘는 보수적인 이 마을이 어떻게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는지를 흥미로우면서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캐슬록 마을에 새로 문을 연 니드풀싱스는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로서 마을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물건들을 골라 쇼윈도에 잘 진열을 하여 손님을 모은다. 첫 손님은 동네 꼬마인데, 너무나 가지고 싶어하는 야구선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면서 첫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가게는 단순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 같은 일을 시키는 것으로 최종 댓가를 치르게 한다.

 

영화 Needful Things (1993)

 


욕망을 자극하는 악마와의 거래

 

소설의 인물들이 꽤 많이 나오는데, 모두 과거에 얽메여있거나 현실을 도피할 상황에 처했거나, 현실의 행복을 모른채 쾌락에 빠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니드풀싱스를 지날 때마다 쇼윈도에는 그들이 원하는 욕망의 대상이 전시가 되곤 한다. 그리고 하나 둘 씩 그들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으면서 잔잔했던 마음에 광기와 집착이 자리잡게 된다.

 

손에 쥐게 된 어떤 욕망의 실체들은 그들의 삶을 갉아먹기 시작하고, 가게 주인인 릴런드 곤트가 시킨 장난같은 일들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 깊숙히 두었던 어떤 편견과 의심, 증오심을 다시 수면위로 올리고 만다.

마을 사람들에게 시킨 장난은 그들에게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다른 대상에게 쪽지를 몰래 주거나 오해를 살만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그런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기꺼이 거래에 동참을 한다.

 

영화 Needful Things (1993)

 


한 마을이 파멸하기까지 끝없이 질주하는 악마의 수행자들

 

니드풀싱스 가게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가 불러일으키는 잔인한 나비효과는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속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많은 인물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혼란스럽지 않고, 심지어 곤트가 짜놓은 얽히고 섥힌 복잡한 장난질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전개된다. 또한 세세하고 찰떡같은 비유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더욱이 스티븐킹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의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어렵지 않게 헐리웃 영화 한편을 감상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작가의 소설이 영화로 잘 만들어지나보다)

 

영화 Needful Things (1993)

 

스티븐킹이 만든 공포의 대상들은 소설이든 영화든 그 실체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런 악마를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나 본성에 집중하고, 결국 스스로 극복하게 만든다.

그렇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이 주는 공포가 대단한다. 실체 없는 존재와 대결을 해야하는 상황이 주는 서스펜스는 꾸준하고,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속도감이 마을이 초토화되는 순간까지 줄어들지 않는다.

 

근원을 모른채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공포의 해소 또한 어찌보면 납득이 안갈 수 도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공포가 그런게 아니겠는가.

스티븐킹 스타일의 공포는 그 실체를 끝없이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욕망을 파는 소설가 스티븐킹

 

내 약점을 숨기기 위해, 내 과거를 덮기 위해, 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잘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사심없는 장난질을 난 과연 할지... 아니, 그보다 이런 약점과 욕망을 떠오르게 하는 집착 때문에 나 또한 현실을 보는 눈이 멀어버리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욕망을 파는 집’이 혹시나 니드풀싱스에서 파는 책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나 또한 일상 생활을 뒤로하고 책에 빠져 지내게 만드는 치명적인 소설이었다.

 

혹시 스티븐킹이 릴러드 곤트씨가 아닐까.

 

영화 Needful Things (1993)

 


소설보다 한층 약해진 수위, 영화 'Needful Things'

 

90년대에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니 한번 찾아 봐야겠다. 난 주인공 보안관인 앨런이 자꾸 ‘기묘한이야기’의 하버 보안관으로 상상이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에드해리스가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 

자극적이고 외설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90년대 호러영화에 얼마나 잘 표현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상상한 것 만큼은 아닐 듯 하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악마와 거래를 하고 파멸로 가는데, 영화에서는 소년의 이야기는 수위를 많이 낮췄다고 한다. 

 

어쨋든 이정도 소설이라면 다시 한번 세련된 호러 영화로 나와도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