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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더글라스 케네디 - 오후의 이자벨 Isabelle In The Afternoon

 

미국인들에겐 프랑스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는 듯 하다. 특히 프랑스 여자에 대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오후의 이자벨'은 풋내기 미국 청년이 파리에서 15살 연상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고 오랜 세월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을 그린다. 여기서 이자벨은 프랑스 귀족집안의 나이든 남자와 살면서 어린 미국 청년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에도 관대한 오픈마인드의 프랑스 여성으로 나온다.


공감하기 어려운 이자벨과 샘의 사랑 이야기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 물론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써가며 그들의 행위가 진짜 사랑이라 포장하지만, 내가 볼 땐 어리숙한 남자가 진짜 뜨거운 밤을 보낸 이후 연상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가정도 못지키며 사는 멍청한 남자라 생각한다.

평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진짜 사랑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고 쳐도, 그들의 사랑은 젊은 청춘들의 열병같은게 아니다. 한명은 대학생이라해도 한명은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남자는 그렇다 쳐도, 쿨내 풍기며 멋진척하는 이자벨은 어떤가. 부유한 가정을 버리진 못하고, 남편도 바람을 피우니까 마음 편하게 연하남 꼬셔서 본인 성욕을 채우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에겐 끝까지 본인의 통제 속에 관리가 잘 되는 남자가 샘인 것이다.

소설 속 두 캐릭터에겐 섹스 외에는 어떤 교감을 묘사할 만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이라는게, 끊임없이 현재를 부정하고 서로를 갈구하는, 그저 현재 불만형인 미성숙한 성인의 일탈로 보일 뿐이다.

 

그저 발정난 남자의 성욕 채우기 스토리

처음 이자벨의 모습은 남자를 단숨에 눕히고 쾌락을 추구하는 쿨한 여성처럼 보였다. 그리고 오후마다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가 홀딱 벗고 놀기 바쁜 남자주인공 샘은 현실감각없는 몽상가 타입의 한심한 남자 같았다. 소설이 끝나갈때까지 샘은 현실에서 매번 길을 잃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찾는다.

소설은 이 둘의 사랑에, 아니 발정난 남자의 행동에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여성을 알콜 중독자로 묘사한다. 샘은 레베카에게도 사랑을 느꼈고, 미래를 보았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통제불능의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 상태에서 샘은 이자벨을 다시 찾는다.

심지어 아내가 아파서 당분간 섹스를 못한다고 하자 남자가 혼란스러워한다. 발정난것도 모자라 미친거 아닌가? 이게 뭔 거지같은 스토리냐고... 정말 샘의 생각이나 행동을 보다보면 뇌가 귀두에 달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불륜스토리는 주변인들의 아픔 따윈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러니 불륜을 해도 떳떳한 사람들이 많은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작가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진정한 사랑을 못찾고 헤매는 남녀들에게는 족쇠로 느껴진다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이 두 인물들은 영혼의 교감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타이밍 또한 안맞아 엇갈리는 코메디같은 인생을 산다.


각설하고 내 결론을 말하자면 성욕을 통제못하는 남녀의 인생을 아무리 포장해봤자라는거다. 그런 열정적 에너지를 배우자와 가정에 충실하는데 쏟는 노력은 왜 안되는 걸까. 섹스를 못하는 상황이 되자 가정이고 뭐고 던져두고 본인 욕구를 풀어버리는 남자의 모습에서 어떤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전작 중 '모멘트'와 '행복의추구'를 섞은 듯 한 전개가 익숙하다보니 마지막이 예상되는 고전 신파의 길도 뻔했다. 꼬박 하루 붙잡고 단숨에 읽었는데, 처음으로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시간이 아까운 적도 처음이다.

 

오후의이자벨 해외판

내가 슬픈 로맨스 소설을 읽을 나이가 지난 듯 하단 생각도 했지만, 하나 확실한건 사랑은 섹스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이 미국식이고 프랑스식이라면 그건 정말 미성숙하고 덜 발달된 서양식 사고방식일 뿐이다.

 

이미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하는 서양인들에게 '진정한 사랑찾기'란 그저 현실도피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오후의 이자벨'은 이 둘을 상징하는 도시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고, 감정의 교감을 제대로 그리지도 않고, 30년의 세월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님, 이번엔 아주 대실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