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주 독서/소설

영화보다 잔혹한 스티븐킹의 걸작 호러 - 미저리 Misery

 

 

스티븐킹 소설 '미저리'는 참 기대를 많이 했던 고전 스릴러 작품이다. 영화로도 더 유명해서 미저리 하면 케시베이츠의 얼굴이 딱 떠오를 수 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미저리를 케시베이츠가 연기한 캐릭터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미저리는 소설 속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로맨스소설의 여주인공이다) 

 


내용은 영화를 통해 또는 패러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다르다. 소설 '미저리'는 주인공인 소설가 폴이 무의식 중에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눈폭풍 속에서 운전 중 사고를 당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간호는 받는 중이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은 바로 그의 흥행소설 '미저리' 작품의 넘버원팬을 자처하는 애니라는 여성인데 한적한 산속 외딴 집에서 그를 극진히 돌보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수십명을 살해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전직 간호사 애니는 폴의 소설에 대해 광적인 사랑과 집착을 가지고 있고, 극단적인 조울증에다 간간히 넋을 놔버리는 정신이상 등 섬뜩한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웬만한 성인 남성은 제압할만한 체구와 힘을 가진 무지막지한 여성이다. (그녀가 그를 업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그녀는 도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소설 시작부터 폴은 그녀를 혐오하며 그녀의 소름돋는 행동들에 치를 떤다. 잔인한 납치범이면서 그에게 보여주는 토나오는 미소와 여성적 애교, 그 뒤에 벌어지는 조울증적 자학행동,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거나 심지어 맨손으로 쥐를 죽여 피를 케찹소스마냥 먹기까지 하는데 읽는 동안 상상하느라 힘들었다.

 

살인마 애니

 

이제 막 첫장을 읽었는데, 이미 주인공은 다리가 다 망가져 침대생활을 하고 있고, 안정제를 매일 두알씩 먹으며 약에 취한 채 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시작을 하다니...

 

전개가 벌써 이렇게 되어버리면 남은 500여 페이지에는 무슨 이야기로 채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또는 걱정도 되고...

 


애니, You complete me

 

소설 미저리는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부분들로 많이 채워져 있는데, 그저 사이코패스 여성의 납치극이 아니라 소설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박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팬으로서의 광기만큼 작가로서의 광기가 동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결국 그는 몇차례 탈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순간부터 그 스스로도 작품 완성도에 집착을 보이는데, 결국 스티븐킹이 작가로서의 작품을 쓸 때 느끼는 강박과 집착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미저리 - 애니 윌크스(케시 베이츠)

 

애니와 폴은 팬과 작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광적인 집착이 동일시 된다. 애니는 대충 쓴 미저리 후속편 (이미 미저리는 죽고 완결된 시리즈인데, 애니는 미저리를 살려내라고 한다)을 보고 분노하는데, 이야기는 그동안 쌓은 맥락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독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진정성을 가지고 채워줘야 한다 주장한다. 납득이 가게 미저리를 살려내란 말이다!

 

비록 그녀는 사이코이지만 소설 '미저리'의 충실한 독자로서 그에게 자극을 주고, 결국 그는 맥락상 한치의 결점도 보이지 않으면서 죽은 미저리를 살려낼 묘안을 찾는다. 심지어 그 부분에선 작가로서 순수한 희열도 느낀다. (폴도 사이코 같아..) 그리고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력을 찾고, 그가 스스로 표현한 것과 같이 '세헤라자데'가 된다.

 

즉, 그 스스로도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원고를 써 나가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런 집중력이자 추진력이 생기는 걸 종이에 구멍이 생기고 빠져든다고 표현하는데, 폴이 겪는 창작의 고통 또한 결국 스티븐킹 자신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제와도 같은 '알고 싶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알고 싶어'
독자들에게 다음 장을 알고 싶어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미저리 시리즈에서는 자유자재로 해 내는 바면, 정통 소설을 쓸 때는 그런 감정이 엉뚱하게 변질되거나 한술 더 떠 아예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폴은 늘 짜증이 났다. 소설을 쓰면서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알고 싶어'를 찾아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감정을 찾았을 때는 항상 확실한 감이 왔다. ... '알고 싶어'를 얻고 나면 작업의 진실성을 입증한 듯한 기분도 들었다. ... '알고 싶어'는 폴과 애니 둘 모두를 살려 놓았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애니는 일찌감치 폴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죽여 버렸을 것이다.

 

재미있는건 이야기에 푹 빠져 소설 속 세계의 결점들을 찾아내고 분노하는 독자나 꽉 막힌 이야기를 풀기 위해 고심하는 작가가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데, 결국 사이코 애니 덕분에 폴은 전례없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자신의 대척점에 있는 배트맨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You complete me'

 


영화보다 잔인한 소설 미저리

 

소설을 읽으면서 케시베이츠 얼굴이 떠오를 수 밖에 없지만, 내 생각엔 소설 속 애니는 케이베이츠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크고 섬뜩하게 생겼다고 본다. 그리고 그녀의 살인적인 미소나 싸늘한 표정 등은 영화에선 표현될 수 없는 소설만의 호러 포인트이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호러장르는 영화보다 소설을 더 선호하는데, 확실히 원작들과 비교하면 소설은 어린이 수준이라 하겠다. 그녀가 경찰을 죽이는 장면에서 잔디깎이 기계로 얼굴을 갈아버리는건 영화에선 볼 수 없다. 총 몇방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전락시킨 영화보단 확실히 소설이 만족할 만하다.

 

영화 미저리 - 영화는 함마를 쓰지만 소설에선 도끼로 발을 절단한다.

 

주인공 폴의 처지도 영화와 소설은 다른데, 애니 몰래 탈출 시도를 몇차례 하고 식칼을 몰래 챙기기도 하는데, 사실 애니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고, 확실한 물증까지 나오자 가차없이 그의 발을 절단해버린다. 그리고 그녀가 공수해온 타자기의 버튼이 하나 둘 망가지고 이를 투덜대자 또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린다.

 

이렇게 그에게 신체절단의 공포심을 심어주니 나중엔 감히 그녀에게 도전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완전히 노예가 된 폴의 처지가 수긍이 간다.

 

이런건 상상하는게 더 무서운 법.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하고 고전 읽듯이 시작했지만, 결국 스티븐킹의 '미저리'는 완전히 엄지척 호러물로 각인되었다.

 

사이코패스 애니 윌크스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알고 싶어'를 충실히 만족시키고, 스티븐킹 자신이 겪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심리적 고통을 호러로 승화시킨 참 영리한 걸작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