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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하늘에서 떨어진 돈다발, 살인의 시작 - 심플 플랜 A Simple Plan

 

얼핏 보면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의 스릴러 소설 '심플플랜'은 스티븐킹 키즈로 불리는 스콧스미스의 첫 장편 소설이자 샘레이미 감독의 동명영화 '심플플랜'의 원작이기도 하다.

근래 스티븐킹 소설에 빠져 읽다가 잠시 눈을 돌려볼 마음에 그가 극찬한 작가의 데뷔작에 눈이 갔고, 심지어 이블데드, 스파이더맨, 드래그미투헬의 샘레이미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라 아주 튼튼한 신뢰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무한신뢰 속에 소설을 읽었고,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소동이 대환장살육파티로 변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신랄한 메세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심플플랜 해외판 표지

 


눈 속에서 발견한 돈다발, 비극의 시작

 

아마 한화로 56억 정도 될 듯 하다. 현제 시세로 계산해보니 그렇더라. 아무튼...

작은 동네에서 회계일을 하는 행크와 백수형인 제이콥, 그리고 그저 루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제이콥의 백수 친구 루는 마을 외곽의 자연보호림을 지나다 차로 여우를 치게 되고, 곧이어 여우를 쫓아 뛰쳐나간 개를 뒤따라 숲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추락해 이미 눈에 파뭍힌 경비행기와 눈알까지 파먹혀 처참히 죽어있는 조종사, 그리고 더블백에 든 어마어마한 양의 돈다발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심플플랜'

 

셋이 나눠가지기로 약속하지만, 이 돈이 어떤 범죄에 연루되거나 추척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똑똑한 행크는 딱 6개월만 보관을 하다가 아무일이 없으면 나눠가지고, 누군가 추적을 하거나 위험을 감지하면 바로 불태워버리기로 한다.

작은 마을에는 소문이 퍼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행크는 절대로, 그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약속하지만, 행크가 의지하는 와이프 사라에게 모든 내용을 말하고 만다. 스스로 약속을 깬 행동에 대해 행크는 루도 분명 말을 할 것이라면 서 자신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다.

그저 평범한 세명의 남자는 돈다발을 발견한 이후로 극도의 긴장 속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행크는 스스로를 평범하고 가장 일반적인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는 좀 모자란 친형을 제외하고 형의 친구 루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간주해버린다.

 


첫 살인이 시작된 이후

 

혹시나 범죄에 연루된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경비행기를 누군가 발견하면 돈다발을 챙길 수 있게, 그래서 만에 하나 위험한 존재에게 쫓기더라도 그 누군가를 쫓게, 어느정도의 돈을 비행기에 다시 두기로 한다.

제이콥 형에게는 돈을 두는걸 말하지는 않고, 흔적을 지우러 간다하고 동행을 한다. 경비행기에 돈을 흘려놓고 돌아오는 사이, 차에서 대기시켜둔 형이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만다. 여우발자국을 쫓아 사냥을 하던 동네 사람이 경비행기 쪽으로 가지 못하게 실랑이를 벌이다 때려눕힌 것이다.

 

영화 '심플플랜'

 

사람들 죽였다며 한심하게 울고 있는 형을 먼저 보내고 행크는 쓰러진 남자를 처리하려는데, 죽은 줄 알았던 그가 꿈틀대기에 목을 졸라 죽이고 사고사로 위장을 한다.

그렇게 그는 맨손으로 첫 살인을 저지르고만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총 9명이 죽는데 모두 행크가 직간접적으로 살인을 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연쇄 살인마가 되기까지

 

내 앞에 인생을 완전히 바꿀 돈다발을 가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계속되는 위기의 순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결국 기회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까?

행크는 사실 그리 돈이 부족하지 않은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게다가 곧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50억원의 돈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그는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좌절을 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일상 속에 잊고 있던 어떤 꿈을 생각해낸다.

 

그렇게 그는 그 돈이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득하고 경계를 갖춘다.

 

영화 '심플플랜' (루, 행크, 제이콥)

 

소설 '심플플랜'은 돈에 눈이 먼 순간부터 겪게 되는 심리적 긴장을 매우 잘 묘사했고, 처음 겪는 상황에 노심초사 벌벌 떠는 주인공이 나중엔 죄를 덮기 위해 이웃을 희생량으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행동까지 서슴치 않고 하는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다.

일단 돈을 지키고, 위험하면 태워버리고 없던일로 하는 아주 단순한 계획. '심플플랜'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고립된 인간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소설은 돈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단순히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고 고립된 마을에 이웃과 교류없이 지내는, 스스로 평범하다 말하는 행크와 사라를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난 사실 이 세 남자보다 가장 무서운건 행크의 아내 사라였다.

매 위기의 순간에 남편에게 계획을 말하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장본인이 바로 사라이다. 갓난아기를 재우면서도 살인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 그녀는 자신의 혈육인 아기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잔인한 캐릭터이다.

 

주변인들을 모두 그녀와 아기를 위해 희생해도 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생각들이 서슴없이 나오고, 남편의 살인행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심리적 위안을 주기도 한다.

 

영화 '심플플랜' (행크, 사라)

 

행크와 사라는 마을 이웃과 소통이 거의 없는 가족으로 묘사된다. 비록 이웃과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이 작은 마을의 공동체적 관계란 돈다발 앞에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가치는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결속이란게 없다시피하는 현재, 이런 위태로운 관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무너져버릴지는 모를 일이다

 

형제, 친구, 가족, 마을, 이웃......

 

이 모든 사회적 관계가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유혹에 약하고 모순적인 판단을 하는 어리석은 존재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이 쓰린 행크와 사라의 대화가 있다. 행크는 사라에게 친형을 직접 죽였다고 말한다.

"자기야, 돈 때문에 나도 죽일 수 있어?"

"돈때문에 그사람들을 죽인 건 아냐. 우리가 잡히는 일을 막으려고 그랬어.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랬어."

"그러면 잡히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나도 죽일 수 있겠네?"

"당연히 아니지."

"나를 쏘아야 자기가 살 수 있다면? 나를 쏘지 않으면 내가 자기를 고발한다면?"

"나를 고발할 리 없잖아."

"내 마음이 바뀌었다고 가정해봐. 내가 자백하고 싶어졌다고."

...

"아주버님을 죽이기 전에는? 아주버님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 있어?"

 

영화 '심플플랜' (사라 역, 브리짓 폰다)

 

정말 일이 벌어지기전엔 그 일이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스스로를 가장 평범한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진짜 돈의 주인인 범죄자가 등장할 때 조심하라는 아내에 말에 행크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나도 살인자야. 살인자라는 게 반드시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야."

 


소설의 배경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 전개가 코엔형제 감독의 영화 '파고'를 떠올리게 한다. 무슨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 속에서 매 순간 긴장에 찬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묘사한 덕분에 이야기는 술술 읽힌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눈에 모든게 덮히면 그저 하얗게 보이는 착각. 결국 녹아 진흙탕이 되는 현실. 바닥까지 다 보여준 한남자의 욕망의 실체.

 

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매리 월스톤크래프트

 

우린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일까?

평범한 행크는 너무나 치명적인 미끼를 물었다.

※ 영화와 소설은 돈을 찾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내용이 다르게 전개된다. 소설은 돈의 행방을 찾는 FBI가 의심스러워 보안관과 동행하기로 한날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지만, 영화에서는 함께 경비행으로 향하고 보안관은 행크가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 소설은 이 후 몇차례 살인을 더 저지르고 그동안의 살인이 결국 자신이 원해서 했던 선택임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