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주 독서/소설

인간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는가 - 그린 마일 Green Mile



스티븐킹 작품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에는 분명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 시대적 배경을 꿰뚫는 메시지를 대중적인 소설 장르에 입히는 재주에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으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세대를 거친 대중성에 잘 녹아든 작가의 스타일과 기교는 스티븐킹이 가진 최고의 재능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 고른 그의 작품으로 이번엔 '그린마일'을 읽었는데, 그동안 읽은 그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살렘스롯'을 난 아직까지 최고로 꼽는데, '그린마일'은 재미와 메시지면에서 매우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콜드마운틴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이야기


1930년대 미국 불황기 시대에 꼼짝 앉고 직장에 눌러앉아 가족을 돌보는 운 좋은 한 남자, 폴 에지콤은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도시 루이지애나의 콜드마운틴 교도소의 소장으로 있다. 사형수들을 돌보는 교도소 E동에서 근무하며 매번 사형수들의 마지막 처형을 돕고 있다.

악랄한 범죄를 저지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마지막에 심적 위안을 주고, 전기처형의자에서 그들을 처형하는 일은 그에겐 심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나 실직자가 널린 현시점에 그는 꿋꿋하게 일을 한다.

 

영화 그린마일(1999년 작품) - 폴에지콤 역을 맡은 톰행크스


이야기는 나이든 폴이 콜드마운틴 교도소 시절을 회상하며 양로원에서 글을 적으며 플래시백 전개를 한다.

소설은 존커피를 바로 등장시키지만 그가 등장하기 전 여러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결국엔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모은다. 애초에 연재소설을 재편집한 작품이어서 이야기는 산발적인 여러 에피소드를 보여주지만 결국 존커피를 통해 이야기는 숭고하게 마무리된다.


퍼시 웨트모어


우선 교도관 중 주목해야할 사람으로 퍼시 웨트모어가 있다. 그는 태생이 백인인 데다 연줄이 굉장히 많은,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오만한 사람이다. 그에겐 범죄자를 마음대로 다루는 재미에 교도관 일을 하는 듯 보인다.

곤봉을 휘두르고 범죄자를 멸시하는 태도를 가지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이 남자 굉장한 겁쟁이이다. 그의 비겁한 행동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고는 매번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존 커피는 한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된다.

 

퍼시는 에두아르드에게 마른 스펀지를 머리에 두고 끔찍하게 전기 처형을 한다 

 

에두아르드 델라크루아


프랑스인 죄수 에두아르드는 감방에서 쥐를 키우는데, 퍼시가 위험한 상황에서 오줌을 지린 걸 놀린 대가로 끔찍한 처형을 당하고 만다. 그의 처형을 계기로 퍼시는 존 커피로부터 나중에 평생에 걸친 벌을 받게 된다.

에두아르드가 키우는 쥐는 유난히 똑똑해서 간수와 죄수 모두 좋아하고 쥐의 재주를 즐겨 보았는데, 역시 퍼시는 언젠가 쥐를 잡아 죽일 생각만 한다. 그리고 결국 구둣발로 짓이겨 죽이지만, 존 커피의 능력으로 쥐는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존 커피의 능력을 폴과 그의 동료들이 믿게 된다.

 

에두아르드는 감방에서 만난 쥐 '딸랑이'를 애지중지한다

 

윌리엄 와튼


흉악한 죄수 윌리엄은 평온했던 E동에 찾아온 악마였다. 그는 등장부터 간수들을 긴장시키며 틈만 나면 사고를 치는데, 그의 도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퍼시가 겁쟁이인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존 커피는 그를 만지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고 그는 퍼시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한다.

 

윌리엄 와튼은 매번 소란을 일으키고 독방에 갇힌다

 

존 커피


존 커피는 어마어마한 거구의 흑인인데, 채 10살도 안 되는 소녀 둘을 강간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온 범죄자이다. 하지만 교도관들을 압도하는 체구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눈물을 쏟고 어둠을 무서워하는 조금은 이상한 남자이다.

 

존 커피의 큰 체구 (마이클클라크던컨, 2012년 심장마비로 별세)


그의 재판은 즉결심판처럼 바로 이뤄졌다. 1930년대 미국, 그것도 보수적인 남부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어여쁜 두 소녀가 강간당해 죽었는데 그때 그녀들을 부둥켜안고 있던 인물이 거구의 흑인 존 커피였는데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그는 범인이 되었고, 그가 외치던 '어쩔 수 없었습니다'는 자백으로 인정받아 사형수가 된 것이다.


신이 내린 선물, 존 커피의 특별한 능력


존 커피가 가진 특별한 능력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인데, 어느 날 존 커피는 교도소장 폴을 불러 그가 남몰래 겪고 있던 끔찍한 요도염을 치유해준다. 지옥 같았던 고통에서 벗어난 폴은 존 커피의 과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똑같은 범죄 현상에서 백인이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면 존 커피처럼 수사를 했을까? 그의 치유 능력은 신이 준 선물이었지만, 하필 그 능력이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거대한 흑인에게 부여가 되었다.

 

존은 사람을 치유하면서 흡입한 악한 기운을 다시 입으로 뱉어낸다


존 커피는 인간들의 고통을 보고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별받는 흑인이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은 그 주변엔 없었다. 존은 무력하게 인간끼리 벌이는 잔혹한 범죄를 봐야 했다.

어쩌면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존 커피를 보냈지만, 인간 세계는 구원받지 못할 수준으로 망가져있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인간을 차별하고, 잘못된 판결로 사람을 처형하는 세상에서 구원자는 매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존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교도소장 상관의 아내를 완전히 치유해주지만, 어느 누구도 존의 무죄를 나서 주장하지 못하고 그를 처형장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존은 감방의 어둠을 무서워한다


그렇게 신이 준 선물은 그 시대 무지한 인간들로 인해 전기 처형 의자에서 사라진다.

속죄해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을 가지면서도 그런 자격을 스스로 박탈하는 사람들을 보며 존 커피의 죽음은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눈물로 보낸 폴에게 존은 마지막 선물을 준다.


아직 구원받기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그린마일은 사형수가 전기의자까지 걸어가는 마지막 복도 길을 말한다.

그 길을 꼭 교도소의 복도만을 말하지 않는다. 우린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그 길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결국 그 길의 끝에 다다라서야 지난날을 후회하고 신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경제 불황, 인종차별, 그로 인한 실직과 범죄가 만연했던 1930년대 미국. 그들은 신에게 기도하고 구원을 외쳤겠지만, 정작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리석은 자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내려온 구원자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을 이젠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삶을 채우는 인간은 꼭 끊임없이 재주를 부리던 '딸랑이' 쥐와 같다. 신은 우리를 그정도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스티븐킹의 소설에는 대부분 종교를 광기로 그리고, 집단주의적 시선을 악마가 종종 이용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린마일'에서도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자세를 보여주며 정작 구원의 손길을 알아채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꼬았다.

100세를 넘긴 폴은 긴 여생을 돌아보며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 했다.
우린 모두 그린마일을 걸으며 속죄와 구원을 생각한다. 그 길은 누군가에겐 아주 길고 누군가에겐 아주 짧지만 똑같은 형별일 뿐이다.

언젠가 다시 신이 기회를 준다면, 그때는 기회를 알아차릴 만큼 인간은 성숙해져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특별히' 신을 영접할 존재가 아닌 재주 좋은 쥐처럼 신에게 그저 흥미로운 미물일 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