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이 작가의 작품만 따로 베스트 글을 쓸 정도로 거의 모든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완전한 행복'은 살짝 궤도를 벗어났던 '진이,지니' 이후 다시 그녀만의 서늘한 분위기로 돌아와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정유정 소설 베스트 3 바로가기)
완전한 행복을 위한 완전한 살인
완전한 행복은 제목처럼 이상적인, 하지만 실현불가능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첫장에는 오리를 삶고 뼈를 바르는 오리요리 과정이 유나의 행동을 통해 나오는데, '정유정'소설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건 딱 사람 삶고 뼈바르는 내용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겠다.
주인공 유나는 한차례 이혼을 했고, 재혼으로 다시 가정을 꾸리며 남편과 살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적 부모와 반강제로 떨어져 지내면서 애정결핍과 약간의 트라우마를 가진 듯 하다. 그래서 가족구성원들이 온전히 모인 세식구의 모습은 그녀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고 완전한 행복을 위한 가장 첫 단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완전한 행복이란 이 그림이 망가지지 않게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게 설령 부모나 재혼남의 아이라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다소곳한 외모와 여리여리한 체구로 인해 그녀의 연쇄살인은 행위자와 연관성을 짓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성공적인 살인과 깔끔한 마무리로 '완전한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왔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그녀 주변인들은 거의 항상 졸음운전으로 사망을 하는데, 그녀의 반경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화두가 된다. 마침 또 사라진 그녀의 전남편의 행방을 쫒는 남자의 여동생으로 인해 어지러운 퍼즐은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한다.
사이코패스가 완전한 행복을 찾을 때
완전한 행복은 한국사회의 결핍과 강박이라는 대조적인 현상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듯 하다. 비록 살인의 이유가 될 순 없으나 어쨋든 소설에서 유나는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이 결핍되었고, 그 원인이 언니에게 향하며 악에 받친 감정이 자란다.
자기애가 무척 강하지만 그 구멍을 메울 수 없게 되어버리고, 이 결함은 성인이 되어서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게다가 본인에게 트라우마가 된 성장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려는 강박이 그녀를 잠식했다고 본다.
그리고 토막살인의 현장을 목격한 딸을 통제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으로 감정적 학대를 서슴치 않는다. 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 그녀에겐 조종의 대상이고 통제를 벗어하는 순간 제거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흥미로운건 정유정 작가는 살인자나 사이코패스 캐릭터에게 동기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순수하게 악인을 묘사하고 동정을 주지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유나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지기 싫다.
할머니에게 키워진 유나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유년시절이 사이코패스와의 상관관계를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그저 어렸을 적 결함이 있는 사이코패스 일 뿐이다.
고유정 사건, 가스라이팅, 엽기살인... 모두 현실의 이야기
책을 읽다보면 유명한 고유정 사건이 오버랩이 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점은 굳이 피하지 않고 거의 흡사한 캐릭터와 내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의붓아들의 질식사, 전남편을 성추행범으로 만들고 이혼,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 또는 사망유도 등 거의 대부분의 특징이 동일하다.
이미 현실에서 본 엽기살인사건들이 덕분에(?) 주인공이 벌이는 행위들이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끝날때까지 어떻게 상황이 펼쳐질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씁쓸한건 이 소설보다 현실이 훨씬 잔인하고 엽기적이라는 점이다. 굉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캐릭터이고 이야기이지만 뉴스로 접한 사건들이 더 무서운...... 참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참신함은 덜하지만, 기대만큼은 하는 '완전한 행복'
초기작 '내 심장을 쏴라'에서 다소 산만한 전개를 보여주었으나 이후 점차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갔고, 자신만의 색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완전한 행복'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과 사건들을 치밀하면서도 깔끔하게 엮어냈다. 마치 편집을 기막히게 잘 한 멋진 영화 한편을 본 기분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을 분산시켰다가 여러 인물들의 동선을 다시 한 지점으로 모으는 기술이 소위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감질나게 한 에피소드를 끝내는 미드처럼 계속 다음 챕터로 안넘어가고는 못베기게 만들어놨다.
오랜만에 나온 정유정 신작 '완전한 행복'은 작가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딱 기대치만큼 만족시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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