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는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1800년대 말 즘을 배경으로 포경선 내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음모에 대한 스릴러 소설이다. 온전히 남자들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당시 고래잡이들의 거친 모습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었는데, 첫 장부터 더러운 오물 냄새가 풍기고 과격한 폭행과 살인, 오물보다 더 더러운 소년 성폭행 사건까지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포경선 볼런티어 호는 선장 브라운리와 베테랑 선원들인 드랙스, 케번디시 등이 승선하고 있고, 새롭게 섬너라는 의사가 올라탄다. 이 곳에 정체모를 성폭행범이자 살인범인 함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의 포경 활동에 필요한 잡일들을 해주는 소년들이 함께한다.
이들은 그린란드 쪽 해협을 통해 북극해 부근까지 향하는데, 초반에는 이들의 포경 활동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당시 등불의 원료로 널리 사용된 고래기름으로 한밑천 잡으려는 남자들의 야망과 모험심이 발동되고, 작살로 고래를 잡고 현장에서 바로 고래 지방을 꺼내 옮기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배가 갈린 채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죽는 고래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대자연을 상대로 이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소한 모습이 소설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 본능과 본성만으로 버티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의사 섬너의 시각이 또 흥미롭다. 포경선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지식이 많은 캐릭터인데, 선원들 중에서는 가장 현장 경험이 없고 나약하다. 그는 그저 편하게 (포경선에서 의료활동을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뜻밖에 벌어진 성폭행 사건과 연이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고립된 포경선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섬너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소설은 크게 세 챕터로 나뉘다. 사건의 발단인 사환 살인사건, 사양길로 접어든 포경 사업으로 인해 배를 고의로 난파시켜 보험금을 타려는 일당들의 사건과 이로 인해 얼음 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기, 극적으로 살아난 주인공과 이 모든 사건의 끝을 향하는 복수. 결국 하얀 눈 위에 시뻘건 피로 물들이는 살인들을 선사하며 소설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지옥 생존기를 간접체험시킨다.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곰을 잡고 내장을 비집고 들어가 몸을 녹이는 장면에서는 잔인함보단 숭고한 느낌마저 들게 된다. 영화 '레버넌트'에서 말 몸속으로 들어가 추위를 이겨낸 디카프리오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곰을 통해 다시 부활을 하게 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하거나 그의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소위 인간다움이라 생각한 문명의 이중적인 시각을 버리고 순수한 본능으로 살아가는 이누이트들과 생활을 한다. 그리고 이누이트들에게 열심히 전도하는 목사의 허울과 어리석음을 목도하게 된다. 냉혹한 자연 앞에서 벌거벗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배운 섬너는 인간과 자연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논리만 남은 대자연의 민낯은 서로를 잡아먹는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새끼곰을 풀어주지만 결국 동물원에 있는 북극곰을 보면서 인간의 같잖은 문명이란 게 결국 자연에겐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편 그린란드 지역의 풍광과 낯선 빙하의 풍경, 빙산 위에서 생활하는 어부들의 모습, 포경선과 관계된 낯선 용어들, 이누이트들의 삶까지 모든 게 참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소한 배경을 잘 묘사한 소설을 선호하는데, 이번 '얼어붙은 바다'는 북극해의 간접체험을 생생하게 할 수 있어서 내겐 굉장히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뛰어나게 묘사되었고, 사림이, 그리고 날씨가 언제 또 누굴 죽일지 몰라 바짝 졸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은 단순한 살인사건 이야기로 보진 않는다. 과거 그 시대에는 동물적인 본능이 더 생존에 필요했던 시기라면 이젠 인간다움이 가득한 사회라지만 서로를 죽고 죽이는 또 다른 인간의 양상으로 가득하다.
도덕과 종교 등 부차적인 마음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면서 왜 인간만이 이 지구에서 최강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분명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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