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어버린 공포영화 '샤이닝'이지만 난 영화로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수많은 영화 랭킹 가십뉴스에서 항상 호러물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스탠리큐브릭의 작품 시놉시스 또한 많은 리뷰 영상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안봤지만 다 본 듯한 그런 작품이 되고 말았다.
스티븐킹의 소설 '샤이닝'은 다행히도 영화 샤이닝을 제대로 보지 않은 눈을 가졌기 때문에 편견없는 시각으로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로 각색된 스티븐킹의 작품 중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게 바로 '샤이닝'이란 얘기를 듣고 스탠리큐브릭의 시점이 원작자의 의도 중 어디서 틀어졌는지 찾아보고픈 흥미도 있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오버룩 호텔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이다. 고급스러운 건축물이 한폭의 그림같은 절경의 산속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시대를 거친 수많은 유명인들과 갱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였고, 호텔의 화려한 명성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와 동시에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참혹한 사건들도 많이 발생을 하였는데, 오버룩 호텔은 이런 비화를 숨긴채 여전히 손님을 받으며 호화스런 접대를 하고 있다.

주인공 잭은 한때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지금은 생활고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형편이 안좋아진 전업작가이자 학교 선생님이다. 알콜중독 때문에 사고를 많이 일으켰고, 심지어는 가정폭력도 휘두른 못난 남편이자 한 아들이 아빠이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지인의 제안으로 오버룩 호텔을 겨울 동안 관리하는 일을 맡기로 한다. 오버룩 호텔이 있는 곳은 겨울 시즌에 무시무시한 폭설로 완전히 고립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곳에서 오로지 잭의 가족만 함께 지내면서 보일러와 조경 관리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 창작욕구를 살리기 위해 한적한 이곳에서 스스로 고립되며 작품에 빠져들 심산이 있었다.

한편 잭의 아들 대니는 어렸을 적부터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도 하고 현실에서 빠져나와 다른 공간의 상황을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토니라는 친구(목소리만 들린다)와 텔레파시같은 능력으로 대화를 할 수 도 있다.
대니는 이미 꿈에서 끔찍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몇번 있었는데, 그 배경이 된 곳이 놀랍게 오버룩호텔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빠를 따라 이곳에 운명처럼 머물게 된다.

소설 샤이닝은 귀신에 들린 호텔에서 세가족이 고립되어 지내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게 되는 스토리이다. 수년간 여기서 죽은 원혼들은 악귀가 되어 호텔에 머물러 있는데, 샤이닝이라 불리는 대니의 초능력을 빼았아 호텔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으려 한다. 어쩌면 아이가 그동안 사용한 텔레파시를 감지한 오버룩의 악령들이 이 소년을 흡수하기 위해 아빠 잭을 유인한 것일 수 도 있겠다.
깨질 듯 위태로운 심리상태, 꽉 막힌 소통, 그곳을 파고드는 악령들
영화에서는 '고립'이 주된 공포의 요소였다면 소설은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을 소재로 하는 호러 장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나약해진 상태에서 내면에 있던 광기가 스며나온다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은 확실히 잭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아슬아슬한 상태인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고, 악령들에게 압도당할 수 밖에 없는 상태임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책은 영화와 다르게 잭과 아내인 웬디의 심리묘사가 아주 자세하고 여기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다. 잭의 폭력성이 알콜과 어렸을적 폭력적인 아빠에 기인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의 폭력과 아빠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심리가 매우 아슬아슬하게 경계 끝에서 겨우 균형을 잡으며 버티고 있었다.
아내 웬디는 남편이 거칠고 심지어 아들의 팔을 부러뜨린 적이 있음에도 아들은 그를 더 사랑하는 모습에 묘한 질투를 느끼고 있고, 자신의 결함을 남편 탓으로 돌리려는 심리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녀는 그와 이혼을 생각하지만 아이가 가질 상처를 생각하여 참고, 남편 또한 오랫동안 술을 끊는 노력을 보였기에 함께 오버룩 호텔에 머물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위태로운 심리상태은 악령들이 치고 들어갈 구멍이 많았고, 잭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면서 점점 미쳐가기 시작한다.

대니는 초능력으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얼마나 잭과 웬디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 마음속에 이혼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안다. 대니는 토니라는 허상의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부모님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뿐이다. 겉으로는 아이를 위하는 말을 하지만 대니는 부모가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고, 그의 마음속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닫고 만다. 부모와 자식간의 소통이 완전히 끊긴 상태는 오버룩호텔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도움을 구할 수 도 없어 미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의 능력 '샤이닝'이 보통의 엄마들도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걸 보면 서로를 이해할 줄 아는(이해하고 싶은) 소통 능력이 극대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샤이닝의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잭은 쉽게 악령에게 홀리게 되었고, 대니와 웬디는 이 지옥에서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포의 시작 217호실
소설에서 압권은 217호실을 처음 들어가보게 되는 대니의 에피소드와 화려한 연회장에서 미쳐가는 잭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217호실은 오버룩호텔 중 가장 은밀하고 그만큼 공포지수가 최대치인 곳인데, 대니는 여기서 죽은 여자 귀신을 직접 마주하게 되고 목이 졸려 상처를 입는다. 절대 열지 말라고 했던 217호실 문을 연 이후로 이젠 이 호텔이 완전히 귀신들린 곳이자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도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대니의 목에 난 시퍼런 상처처럼 확실히 각인시켜준다.

그리고 스스로도 미쳐가고 있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는 잭은 결국 그의 트라우마들을 자극하는 귀신들을 이기지 못하고, 귀신 바텐더가 건네는 술을 마시며 완전히 과거의 폭력성을 되찾게 된다. 귀신들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귀신들에게 압도당한 채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귀에 맴도는 소리, '대니를 죽여라'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로크 방망이를 쥐고 이젠 오버룩의 귀신이 되어버린 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러 방을 나선다. 두둥!

마치 극장 공포영화 효과음이 들릴 정도로 세세한 묘사와 전개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확실히 삼류 귀신들린집 장르의 작품과는 다르게 세 캐릭터의 완성도도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포의 존재가 가족 안에 있는 설정도 (지금은 진부하지만) 꽤 경악할만하지 않는가.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 그것도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아빠가 살인자 잭이 되는 과정은 슬프면서도 공포스럽다. 잭 스스로도 쥐고 있던 로크 방망이를 보고 놀라면서도 점점 정신싸움에서 지고마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 섬뜩하게 노출되는 그의 트라우마와 폭력성을 가까스로 억누르려 하는 불안정한 잭은 제각각의 마음의 상처와 불안심리를 가진 보통 사람들을 극대화한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가끔 미친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닐 듯 하다.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캐릭터 외형에 대한 선입견이 컸는데, 영화완 다르게 사실 이들은 금발이고 남편 잭은 배우 잭니콜슨처럼 잔인하게 생기지 않았으며, 웬디 또한 영화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왜 스티븐킹이 영화를 마음에 안들어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소설이 담은 메세지의 지극히 작은 부분을 확대하여 그려냈고, 캐릭터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모두 생략하였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고립된 호텔에서 작가가 결국 미쳐버린 이야기로 귀결될 뿐이고, 이들이 완벽하게 소통이 차단된 상태에서 내적인 불안감이 스며나와 어떻게 정신을 망가뜨리는지가 설명되지 않았다. 샤이닝이란 능력도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감독은 오로지 '고립'에 매력을 느껴 각색한 듯 하다.

소설 샤이닝은 공포영화1위라는 타이틀과는 상관없이 전형적인 공포장르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이 영화처럼 끝날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읽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주 독서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그게 강간인 줄 몰랐다 - 인투 더 워터 Into The Water (0) | 2021.01.10 |
---|---|
북극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기 - 얼어붙은 바다 The North Water (0) | 2021.01.02 |
가장 아팠던 기억의 한 조각을 마주하며 - 워터댄서 Water Dancer (0) | 2020.11.27 |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영혼을 잠식한다 - 사일런트 페이션트 The Silent Patient (0) | 2020.11.16 |
보는 순간 죽게 되는 감각스릴러 - 버드박스 Bird Box (0) | 2020.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