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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김진명 장편소설 - 직지 아모르마네트

 

정유정 작가의 신작 '진이,지니'를 읽고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찾던 중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나 평소 손이 가지 않았던 김진명 작가의 최신작 '직지'를 골라보았다. 김진명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작가였지만 책을 고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설 '직지'는 총 두권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양을 보면 사실 한권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분량이라 생각한다. 어쨋든 새로운 소설에 목마른던 내게 갈증해소로 딱 좋은 소재이자 적당한 분량이었다.


잔인하게 살해된 한 교수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여느 소설이 다 그렇듯 미스테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파헤치면서 거대한 음모를 밝히는 통상적인 전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마치 '다빈치코드'처럼 논쟁거리가 될 만한 사실 속에 그럴싸한 이야기로 포장을 잘 했다.

1권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여기자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는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리 어렵지 않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소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바로 직지이고, 더 정확히는 금속활자가 되시겠다. 그래서인지 살인사건의 범인 추적보단 직지 그 자체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특히 '코리'의 나라에서 온 '카레나'라는 여인에 대한 단서가 핵심이 된다. 기자는 특유의 예리한 분석과 상상력으로 카레나를 좇는다.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카레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예 시대를 옮겨 조선시대 세종이 은밀히 한글을 만들던 상황에서부터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금속활자로 한글 주조를 하는 기술쟁이의 딸 은수.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금속활자로 작업을 해오고 있었고, 세종의 총애를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명나라로부터 조공을 바치던 굴욕의 조선 시대에 명나라 환관들의 비리가 조선 국왕의 운명까지 옥죄려는 상황에 치달으며 그 불똥이 은수에게까지 튄다.

은수가 어떻게 카레나가 되었고 어떻게 해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통해 성경을 인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직지 2권에서 상세히 다룬다. 상상의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 독일에서 벌어진 일들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400년대 바티칸과 독일의 마인츠 뿐만 아니라 쿠자누스 , 발트포겔, 구텐베르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독일 중세 소설을 읽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구텐베르크 초상화

카레나의 운명과 금속활자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이어 다시 현시점의 사건으로 복귀하는데, 사실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 듯 어느새 관심밖으로 밀려있던 살인사건을 급작스럽지만 깔끔하게 결론짓는다. 누가 교수를 죽였는가는 진작에 감이 왔기에 정작 흥미를 끄는 금속활자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내고, 한글과 심지어 반도체로 까지 이어지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민망하지 않게 잘 언급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직지코드'라는 다큐로 금속활자의 이야기는 이미 다큐멘터리로 다뤄졌고, 고려-중국-바티칸 까지 이어지는 금속활자의 대장정은 전세계의 관심사로 등극하기까지 했다. 소설 '직지'는 여기에 상상력의 양념을 더한 그럴싸한 이야기로서, 믿고 싶게끔 자극을 준다. 한가지 흠이라면 카레나의 로맨스가 살짝 무리수 같은 느낌. 어쩌면 부제, 아모르 마네트 때문에 쥐어짠 에피소드란 생각이 든다.

 

Tempus Fugit, Amor Manet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김진명 작가의 전작들을 훑어보니 일단 국수주의적인 색이 있으면서 대부분이 그 시대에 관심이 큰 소재를 다루는 특징이 보였다. 그리고 소재를 아주 잘 포장하는 이야기꾼으로 그 실력도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판매기록을 가진 국내 작가로 꼽혔다고 하는데, 시대적 관심사를 꿰뚫는 소재를 가지고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을 빠른 전개 속에서도 흐트림없이 다루는 솜씨가 참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고작 '직지' 한편으로 김진명 작가를 판단하긴 이르지만 확실한건 '직지'만큼은 이야기가 빠르고 명쾌하고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