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원작의 스토리가 탄탄하고 세밀한 심리 묘사나 실감나는 배경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 세령호의 비극에 내가 직접 휘말리는 느낌이다. 소설의 시작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아들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 거처를 매번 옮기며 사는 서원이라는 아이. 그 아이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어떻게 된 것인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령호는 사람잡아먹는 호수라는 소문이 든 외진 마을에 있는 인공 댐 호수이다. 이 곳에는 호수 옆 수목원 주인이자 치과의사인 오세영과 그의 딸 오세령이 있다. 집착증과 편집증이 있는 오세영으로부터 부인은 이미 프랑스까지 도망을 친 상황. 이 평범하지 않은 가족으로부터 사건의 씨가 생긴다. 그리고 전직 야구선수이자 이젠 퇴물이 된 최현수는 세령호의 댐 관리 팀장으로 새로 부임을 하며 세령호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7년의 밤'은 시작부터 큰 단서를 하나 던지며 도대체 왜 서원이는 이런 불행한 운명에 처해졌고, 정말로 그의 아버지가 마을을 수장시키며 부인과 아들을 죽이려 한 살인마인지 그 궁금증을 안긴 채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느슨해지는 구석 하나 없이 500페이지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밀도있는 스릴감을 선사한다.
'7년의 밤'이 가지는 장점은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그리고 마무리까지 한치의 헛점도 없는 탄탄한 구성이라는 점이다. 특히 각 인물들의 심리나 내적 갈등을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에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된 행위들과 광기어린 집착이 꽤 설득력이 있다. 또한 문하영과 강은주라는 부수적인 인물들도 세령호의 비극을 해결하는데 적절히 활용되면서 '7년의 밤'을 완성하는데 모두 한 몫을 해낸다.
전직 야구 선수 최현수가 사건에 승부수를 던지는 묘사,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며 집착하는 오세영, 잠수부원들의 세계, 세령과 서원의 교감과 이들 사이에 있는 고양이 어니, 그리고 안개 자욱한 세령호와 괴물같이 서있는 거대한 댐 그 자체 묘사들로 인해 소설은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살아 존재해 있었다.
느닺없는 비극이 내게 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촘촘하게 얽힌 인간관계로 인해 쉽게 빠져나올 수도, 모두의 눈을 속일 수도 없겠다. 하지만 나 또한 결국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인건 생각만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상황과 심리를 소설 속 최현수를 통해 대신 체험이나마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는 엉망으로 각색을 하여 최악의 평가를 받고 막을 내렸는데, 아무래도 부수적인 인물들을 버리고 두 남자의 이야기로만 구성을 하다보니 이야기에 큰 구멍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행동들은 관객에게 납득하기 어렵게 비춰졌을 것이다.
약 일주일동안 세령호의 비극일 파헤치며 아주 괜찮은 스릴러 작품을 즐겼다. '7년의 밤'을 통해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뒤늦게 알았지만 이제 그녀의 전작들을 찾아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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