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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정유정표 특급 스릴러 소설 - 28

 

서점을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외국소설'코너의 더글라스케네디 신작과 '국내소설'의 정유정 작가의 작품들이다.

'7년의 밤'을 시작으로 '종의 기원'을 거쳐 이번에 고른 '28'은 정유정 작가가 가지는 인간에 대한 테마와 특히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는 캐릭터의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출간 순서로 보자면 이 세작품 중 '종의 기원'이 가장 마지막인데, 그 작품은 아주 근원적인 인간의 악을 묘사하고,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심리로 이야기를 풀어낸 아주 섬뜩한 소설이다.

 


정유정표 특급 스릴러, 이번엔 전염병이다

 

이번에 읽은 '28'은 인수공통전염병이 화양이라는 작은 도시에 퍼지며 벌어지는 리얼리티 재난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재형이라는 개썰매 선수가 알래스카에서 화이트아웃에 걸려 길을 잃고 심지어 그가 아끼는 개들을 사지로 몬 후에야 겨우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화양시에 은둔하며 유기견들을 거두어 치료하는 수의사로 지내게 되는데, 개와 사람에게만 서로 전염이 되는 치명적인 병이 발병하면서 재난의 중심으로 다시 나서게 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재형 외에도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윤주, 지옥같은 도시를 누비며 모든것을 본 구조대원 기준, 악의 축을 담당하는 동해가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재형이 거둔 '스타', '쿠키', 그리고 상처입은 늑대개 '링고'이다.

'28'은 사람 뿐만 아니라 개의 시선으로도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매 챕터가 시점적 교집합을 가지며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 개의 시선을 모두 담고 있다. 이야기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개의 시선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인간 캐릭터와 동급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지옥이 되어버린 도시, 그리고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

 

본격적인 이야기는 끔찍한 살육의 현상, 정확히는 잔인하게 죽은 개들이 있는 사건 현장에 기준이 출동하고, 처음으로 '링고'의 실루엣과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처음으로 핏덩이같이 빨간 눈으로 변한 전염 환자를 발견한다.

구조대원, 간호사, 유기견 등 개와 사람에게 순식간에 전염병이 번지면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정부는 극단의 조치로 도시를 폐쇄를 하게 되는데, 야심찬 기자 윤주가 섣불리 올린 기사 때문에 전염병의 원인이 개라고 밝혀지면서 화양시의 모든 개들은 살처분을 당한다.

 

실제로 정유정 작가는 구제역 발병으로 돼지가 살처분 되는 뉴스를 접한 후 인간이 극단적으로 처리하는 대상을 반려견으로 탈바꿈하여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이 강한 몰입감을 주는 이유는 순식간에 퍼지는 전염병으로 도시가 지옥으로 변하는 현상에 상당한 리얼리티를 가미하여 독자로 하여금 일말이 희망도 주지않기 때문이다. 꼭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공의 절망은 고스란히 우리의 심장을 후벼판다. 그저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를 돌보는 아내나 걸음마하는 아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개들이 인간에 의해 생매장을 당했지만, 화양시의 사람들 또한 나라로 부터 격리당하고 결국 살처분의 대상이 되는 묘사를 통해 결국 '살고싶다'는 메세지를 개가 아닌 화양 사람들 통해 대신 전달하고 있다.

 

꼭 존엄이라는게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것일까. 모든 생명에게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정부 상태에 도시는 무법천지가 되고 결국 아버지를 기다리는 간호사 수진을 윤간한 인간들을 보면, 인간을 물어뜯어 죽이는 들개들보다 못한 존재란 생각을 했다. 존엄을 부여할 가치가 없는 인간.

너무 생생한 지옥의 묘사와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인물들을 죽여버리는 충격적인 전개로 소설을 몇번이고 덮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었다. 수진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한동안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

 

누군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준 재형은 이 죄책감으로 인해 마을에 버려지는 개들을 치료하고 돌본다. 그리고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는 인간보다 숭고한 이 지구의 생명들의 존엄을 지키려 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서로를 죽이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준과 링고의 사력을 다한 싸움은 재형의 희생으로 마무리 된다. 결국 속죄하고 모든걸 용서해야 이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재형은 그렇게 살리고 싶었던 '링고'와 함께 숨을 거둔다.

복수를 용서하는 것.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지 못한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가장 견디기 어려운 행위들이지만 우리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통해 몇가지 사건들이 떠오른다.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사건...

가슴 깊이 둔 분노와 울분은 이미 대한민국에 전염병처럼 퍼져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이려드는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과연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