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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서/소설

베르나르베르베르 고양이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왔다. 제목은 '고양이'

사실 어느때인가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고, 이는 그의 상상력의 한계 또는 더이상 흥미롭지 않은 소재 때문이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듯한 작품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 밖으로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더글라스 케네디의 맛깔나는 일탈 이야기에 푹 빠져 지내다가 (아마, 그의 소설은 전부 다 읽은 듯 하다.) 더글라스의 신작이 뜸할 즘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로 다시 관심을 가져 볼 마음이 생겼었다.

까만 고양이 표지의 두권짜리 소설책은 평소 보다는 낮은 기대치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큰 내용의 줄기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거의 멸망 직전의 지구의 모습을 비추는 것 이다. 파리가 배경이며 주인공인 고양이는 이웃집의 실험 고양이 (뇌에 USB 연결 포트가 있다)를 알게 되는데 인간의 지식을 습득한 이웃집 샴고양이를 통해 세상만사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세상을 보는 시점을 고양이를 통해 투영하고, 인간이 저지른 전쟁과 비참한 결과를 관조적으로 보여준다.

개의 생각 :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인데, 인터넷 지식을 습득한 샴고양이가 역사와 신화를 설명하는데, 마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고양이편을 읽는 듯 하다.

이야기 구조는 이렇게 두 고양이가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생각들은 온전히 그 동안의 베르베르 특유의 (또는 진부한) 색깔이 잘 담겨 있다. 생명이 있는 지구, 인간과 소통을 하는 꿈세계의 연결, 새로운 인류상, 동물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잡다한 지식들... 모두 그의 전작들의 메세지를 하나로 잘 꿰어 '고양이'라는 소설을 탄생시켰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다 나를 위한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은 내 영혼이 현신을 위해 선택한 차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친구들은 내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내 적들과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무수한 장애물들은 나의 저항력과 투쟁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내가 부닥치는 문제들은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준다.

나는 내 행성을 선택했다.

나는 내 나라를 선택했다.

나는 내 시대를 선택했다.

나는 내 부모를 선택했다.

나는 내 육체를 선택했다.

 

읽다보면 마치 내가 고양이가 된 듯 그들의 습성을 잘 표현하였고, 고양이의 생각을 통해 인류에 대한 거창한 주제를 어색하지 않게 전달하는 노련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르가즘을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사고를 깨닫는 황당한 고양이에게 나는 쉽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번 신작에서는 아주 오래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타나토노트 등 초기 작품들이 가졌던 참신함과 신선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풍자 또한 날카롭고 해학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틀만에 다 볼만큼 흥미진진하였만 너무 빨리 끝나버려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어쨋듯 책을 산 후 이틀간은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