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화제의 중심에 선 뜻밖의 소설이 있다. 작가 델리안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소개글에는 리스 위더스푼이 홍보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았더라도 분명 입소문을 타고 화제작 반열에 올랐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우선, 작가의 경력 때문인지 소설의 배경인 습지와 주인공 카야의 삶이 상당히 설득력있었고, 인상깊게 느껴졌다. 그리고 스토리텔링 또한 손색이 없었기에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고, 카야의 세계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습지 소녀 카야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
이야기는 막 집을 떠나는 엄마를 바라보는 소녀의 슬픈 시선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평소 아끼던 구두를 신고, 옷도 잘 차려입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주인공 소녀 카야의 애처로운 삶이 시작된다.
카야는 가난한 판자촌집에서 술주정뱅이 아빠와 함께 사는데, 그의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언니와 오빠 모두 집을 떠났고 결국 홀로 아빠와 남게 된다. 판자집이 있는 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습지 지역이었고, 뱃길도 복잡하여 쉽게 접근도 어려운 그런 곳이다. 기댈 가족이 없어진 소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모든걸 자연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잠시 후엔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급기야 목구멍 너머 딱딱한 명치에서 꺽꺽 흐느낌이 비어져 나오고 말았다. 우유갑이 비자 카야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갈매기들마저 그녀를 버리고 떠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도저히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 만 같았다.
사회복지사의 도움도, 학교라는 울타리도 그녀에게 상처만 줄 뿐 이었다. 아직 그녀는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하기엔 어렸고 약했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채 척박한 습지에서 사는 그녀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유색인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백인 아이였다.
비록 마을에서는 정신나간 마시걸(Marsh Girl)로 불렸지만, 그녀를 돌봐주는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룻터를 지키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네 부부가 그녀를 따뜻하게 대했고, 습지 근처에 종종 오는 착한 소년 테이트는 그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준다.
스물아홉 다음엔 뭐야?
카야가 테이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시작으로 테이트는 그녀에게 그가 배운 모든걸 가르쳐준다. 카야에 대한 테이트의 사랑은 참 순수하고 참되었다. 테이트의 배려넘치는 모습은 그녀가 상실과 고독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카야는 매일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자연과 대화하며 생활을 했고, 마을사람들은 알 수 없는 습지의 넘치는 생명력을 만끽하며 지냈다. 딱 한번만 학교를 가고 그만두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그녀이지만, 테이트가 끈기있게 글을 가르친 덕분에 그녀는 습지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종종 주변에서 줍는 특이한 깃털, 매일 만나는 다양한 생명체와 식물에 대해 세밀한 기록을 했고,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습지를 대한 그녀는 결국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습지연구가가 된다. 테이트의 헌신이 그녀를 자연속에서도 충분히 그녀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법정 스릴러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그런 소녀의 성공담만을 말하지 않는다. 제목도 나릇나릇해서인지 러브스토리 내지 성장소설로 비춰지지만 사실 이야기는 과거시간의 카야의 성장과 현재의 마을 살인사건 수사가 교차 전개되는 구조이다. 그리고 죽은 남자가 카야의 두번째 남자친구이기 때문에 카야의 이야기를 그저 느긋하게 바라볼 수 만은 없었다. 그녀과 관계된 모든 내용들이 살인사건을 푸는 단서이자 알리바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 흥미로운 전개 덕분에 각 장에 표시되는 과거와 현재의 년도가 점점 가까워질 수록 사건의 실체로 향하는 속도는 빨라지면서 이야기의 흡입력이 굉장해진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살인사건 재판씬이라 할 수 있다. 차곡차곡 쌓은 카야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우린 그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얼마나 어렵게 성장했고,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죽은 녀석이 얼마나 쓰레기같은 놈인지말이다. 그래서 난 재판에서 카야를 변호하는 말 하나하나에 격한 공감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재판 상황이 치열해질 수록 난 마음속으로 '카야는 무죄다!'를 외치며 열심히 그녀를 응원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굳은 편견에 맞서 싸우며 진실공방을 하는 변호씬은 본격 법정 스릴러 장르인냥 소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마을사람들이 한명씩 증인으로 나오며 마시걸에 대한 목격담을 이야기하는 데, 비뚤어진 추측과 생각으로 가득한 거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의 심문 장면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명쾌했다. 난 이 꼬장꼬장한 배심원들이 어떤 판결을 낼 지 걱정하며 판결문이 나오는 다음장을 보려는데, 소설 '앵무새 죽이기'처럼 결국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순 없는건 아닌가 생각하며 잠시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다. 카야의 터전인 습지는 자연을 정화하는 곳이지만, 사람들에겐 그저 개발해야하는 버려진 곳으로 치부되고, 생명이 풍요로운 곳임에도 인간들에겐 접근하기 어렵고 외진,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운자들이 모인 마을은 편견과 교만이 가득했고, 반대로 습지는 물질적이고 속물 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범접할 수 없는 태초의 순수같은 곳으로 비춰진다.
카야와 테이트의 대화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나온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카야는 습지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그녀답게 사는 인생을 택한다. 하지만 편견 가득한 사람들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녀를 무서워하고, 누군가는 성적으로 탐닉하고, 누군가는 그녀야말로 살인범이라 말한다. 지독한 편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래서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하는거야. 난 한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
난 사람들이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나답게 사는 방식이 비록 남들과 많이 다르다고 해도, 나도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심지어 카야의 생활환경만 보고 카야네 가족이 흑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장담하는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끝날때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정말 이 소설은 성장소설과 로맨스, 추리를 넘어 법정스릴러까지, 그 장르적인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면서 장점만을 모아놓은 듯 하다.
카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얼마나 사회에 길들여진 탁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마치 이 지구에 마지막 남은 어떤 순수를 지켜주지 못한 좌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장에서는 자연이 가르쳐준 대로 삶을 살며 자신다운 모습을 끝까지 지킨 카야를 보며 숙연한 마음까지 생기게 되었다.
자연주의와 페미니즘, 인종차별, 성장과 로맨스, 게다가 스릴까지 멋지게 담아낸 참 기대 이상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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