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독서/소설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렴 - 펭귄을 부탁해 Away with the penguins

libros y mi sueño 2021. 6. 6. 23:50

 

제목부터 미소가 절로 나오는 '펭귄을 부탁해'는 86세 스코틀랜드 할머니의 남극으로 향하는 무모한 도전 속에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따뜻한 행복찾기 소설이다.


전재산을 펭귄을 위해 쓰신다고요? 당신의 유일한 손자가 여기 있는데...

 

가족이 없이 홀로 늙어가고 있던 베로니카 할머니는 어느날 TV에서 소개하는 남극의 펭귄과 펭귄보호를 위한 이야기를 보고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의 남은 재산을 바로 저 펭귄들을 위해 쓰기로! 그리고 바로 직접 남극의 펭귄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로 결심한다.

 

남극을 간다고? 띠용~

 

한편 실업급여를 받으며 살고있는 청년 패트릭은 친구의 자전거 가게에서 수리를 하며 근근히 지내는데, 어느날 자신이 그의 친할머니라며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는다. 바로 베로니카가 사설탐정까지 써가며 자신의 유일한 혈육일지도 모르는 손자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과연 남은 생을 마음 내키는대로 살고 있는 고집센 할머니의 눈에 들어 유산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홀랑 펭귄들이 먹을 것인가... 그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절대로 울지 않다니요. 그건 불가능 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흥미진진하면서 남극처럼 맑고 깨끗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뻔한 동화같은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다. 괴팍하고 쌀쌀맞는 베로니카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일기장이 펼쳐지면서 그녀의 과거 이야기가 조금씩 밝혀진다.

 

1940년대 전쟁 속에서 베로니카가 겪은 슬프고 비참한 사건들을 통해 우린 진짜 그녀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된다. 왜 그녀가 펭귄에 집착을 하는지, 왜 손자를 찾으려 했는지, 왜 가족잃은 어린 펭귄을 꼭 구하려했는지, 왜 그녀는 눈물이 없는지...

 

그 어느 때보다 마거릿 고모할머니가 미웠고, 내가 바닥에 쓰러지는 수간 할머니가 한 이야기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우는 건 이기적인 일이야, 베로니카. 이제 부모님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까. 눈물은 약하다는 뜻이야. 너희 부모는 네가 우는 걸 원치 않을 거야.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하는 소녀 베로니카는 전쟁으로 부모와 생이별을 하게 되고, 보수적이고 독실한 고모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예쁘고 성격도 밝은 아이지만 동네 청년의 손길을 피하다 오해를 사게 되고, 그녀는 친구들을 잃게 된다.

 

하지만 전쟁 포로로 온 이탈리안 청년 조바니와 비밀스런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조바니는 포로의 신분으로 다시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홀로 아이을 낳지만 보수적인 시대상 뿐만 아니라 수녀학교라는 특성탓에 그녀의 아이는 강제로 어떤 부부에게로 입양이 된다.

 

부모부터 사랑하는 남자에 이어 막 낳은 아이까지, 그녀는 사랑을 해야할 대상들과 이렇게 강제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가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애정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녀의 유년기는 그렇게 멈춰버린다.

 

펭귄을 부탁해 해외판 표지

 

베로니카 할머니의 심장에 무슨일이 벌어졌다.

 

베로니카가 남극으로 가겠다고 하는 이 뜬금없는 결심을 보면서 처음엔 괴팍한 할머니가 도대체 왜이럴까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그녀가 남극에서 관찰하게 되는 펭귄 무리의 헌신적인 가족애를 떠올려 보면 그녀가 애정을 줄 대상으로 펭귄을 고른게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펭귄의 이야기와 베로니카의 슬픈 가족 이야기는 이 이야기의 주제를 건드리는 공통 분모였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알을 품은 아빠 펭귄의 사랑은 베로니카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아빠의 사랑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펭귄을 잃고 새에게 잡아먹히뻔 한 아기 펭귄을 구하며 키워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베로니카가 자기 자신을 구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나는 베로니카가 정신을 잃은 후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 아빠와 엄마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거치는 꿈을 꿀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베로니카는 그저 86세의 쭈글거리는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잠깐 헤어지기로 약속하고 다시 만난 날을 기다린 연약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고모할머니가 절대로 울지말라는 엄중한 말에 그녀는 평생을 울어본 적없이 횡한 가슴을 안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남극으로 온 후 그녀는 펭귄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그녀는 결국 평생을 참아온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천천히 몸을 폈다. 모든 것이 변했다. 과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나의 아빠, 엄마, 조반니, 소중한 아들 엔조의 기억들이 내 의식 속에서 고통스럽게 싹을 틔웠다. 다시는 찾을 수 없었던 내 어린 아들은 엄마 이름을 부르는 법을 알기도 전에 떠났고, 내가 자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알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나는 얼마나 그들을, 그 삶을 그리워했는가. 내가 너무나, 너무나 빨리 빼앗겨 버린 그 삶. 나는 폐부 깊숙한 곳이 옥죄어 오는 기분을 느꼈다.
...
이거구나,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펭귄들의 삶의 목표로구나. 내 삶에는 저 '함께'라는 것이 빠져 있었다. 슬픔이 폭풍처럼 내 안을 휩쓸었다. 갑자기 나는 바람과 함께 울부짖고, 뜨거운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남극의 펭귄들 덕분에, 그녀석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이 한맺힌 할머니의 가슴을 이렇게 보듬는구나.


가능하다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렴

 

베로니카는 처음 만나게 된 손자 패트릭의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결국 사연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패트릭도 그녀처럼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홀로 자라온 상처받은 소년이나 다름없었다. 베로니카의 상실과 이별은 그녀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에게까지 뻗친 것이다.

 

베로니카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 비극을 손자 패트릭이 또 겪지 못하게 과학자 테리와 패트릭을 잇는 오작교 역할을 한다. 그녀는 돌아갈 시간을 하루라도 더 늦춰 테리와 패트릭이 눈맞을 시간을 더 가지게 한다. 그 나이에 아픈척을 하면 주변사람들 마음이 어떨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꾀병까지 부려가며... 10대 시절 당돌한 소녀 베로니카로 돌아온 듯 했다. 베로니카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보며 너무나 마음이 흐뭇해졌다.

 

베로니카 마음속에 평생 각인된 아빠의 말. 그녀는 아빠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베리.
이 세상을 더 나쁜 곳으로 만드는 사람,
그냥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
가능하다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렴.

작가 헤이즐 프라이어와 소설에 등장하는 아델리펭귄

 

'펭귄을 부탁해'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겹겹이 쌓여 있는 선입견과 편견이 녹아 내릴 때 우린 상대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여기에 펭귄은 없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 온전히 사랑을 쏟을 때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꽁꽁언 남극에서 기대한 발칙한 모험담은 없었지만, 이보다 더 깊고 가슴시린 베로니카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 덕분에 내내 웃고 울며 즐길 수 있었다. '펭귄을 부탁해'는 참 가슴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