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21세기를 사는 현재의 우리들은 초강대국인 미국과 역사적, 문화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유럽 국가들을 동경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불과 200년 전 세계의 체스판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형국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는 미국 휘티어 대학에서 동양사와 세계사를 20년 넘게 가르치고 있는 로버트B.마르크스 교수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근 500년의 세계역사 이야기를 풀어냈고, 서구의 부상에 대해서는 그들이 흔히 주장하는 민족적 우월성이나 필연성이 절대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이야기는 1300년대부터 시작한다.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세계의 생산성의 대부분을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 농업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중국, 인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거대 제국이 자리를 잡고 있고, 유럽은 거의 변방에 불과한 구조였다.
실제로 1700년대까지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생산의 80퍼센트를 차지했고, 인도는 세계최고의 면직물 수출국었으며 세계최대의 도시의 대부분이 아시아에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제국은 유럽이 중국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으며 전성기에는 이베리안 반도부터 동남아시아까지 동일 문화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세계의 부를 집중시키는 당시 아시아의 위상은 지금의 아메리카를 능가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상상이 가는가, 유럽 사람들이 인도의 면제품을 최고로 치고 인도의 제품 때문에 무역보호를 하며,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 신항로까지 개척하는 상황이.
중국, 인도 시장으로 향하려는 유럽의 열망은 대항해시대의 동력이 되었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나 모험심같은 그럴싸한 이유로 설명하지 않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과 평화롭던 인도양에 대포를 앞세운 유럽함선들이 등장하면서 식민지 정책의 씨가 싹을 트게 된 점을 상기해보면 유럽이 선진국이 되는데에는 많은 국가들의 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산업혁명을 계기로 세계의 부는 유럽으로 향하게 되었고, 식민지 정책과 함께 인도와 중국, 아프리카는 산업화의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채 성장을 멈추게 된다.
이 책은 영국이 산업화에 성공하고 중국은 그러지 못하였음을 당시 상황과 나름의 의견을 담아 설명한다.
부와 에너지의 원천이 토지에서 나오는 농업사회에서 토지의 부족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살릴 자원의 한계로 문제가 되었고, 이를 극복한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로 그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정점에 달하게 되자 유럽인들은 스스로 산업화의 성공을 유럽인의 우월성으로 생각하고 나름의 논리를 전파한다. 하지만 작가는 절대적으로 이 결과는 영국에 시의적절게 발생한 우연의 연속일 뿐인데, 특히 땅 밑에 가득한 석탄 자원의 발견과 식민지 상황이 맞물렸을 뿐이라 강조한다.
당시 땔감으로 동력을 발생하는 환경에서는 삼림 자원이 필요한데, 인구를 먹여살릴 식량 자원의 확보와 산업을 발전시킬 에너지 자원의 확보가 관건인 상황에서 부족한 토지는 식량생산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국은 식민지 땅이 있었기에 목화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그들의 발 밑에 석탁이 광대하게 매장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석탄은 분명히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문제는 석탄을 캐는 작업이 시간이 갈 수 록 더 깊게, 그리고 도시에서 더 먼 곳에서 행해진다는 점이었다.
광산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다 증기 기관을 활용하게 되는데, 아주 비효율적인 이 기기는 석탄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광산에서만 사용이 되었을 뿐이다.
증기기기관의 발명 자체는 광산에서만 빛을 보았는데, 석탄을 나르는 광차에 증기기관을 설치하고 결국 증기기관이 광산을 벗어나면서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중국은? 아쉽게도 석탄이 없었을 뿐이고, 늘어나는 인구에 맞게 식량 생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식량이 아닌 수출용 목화를 재배할 땅이 확보가 되었다면 영국과 같은 길을 갔을까?
구시대에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중국과 방직과 동력의 힘으로 토지기반 산업의 한계를 극복한 영국을 비교해보면 교수가 말하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도 결국은 당시의 발견과 선택의 결과로서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그동안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아메리카 대륙 발견, 대량의 은의 유입과 식민지정책, 산업혁명의 성공 등)이 '만약'이라는 말로 그러하지 않았다면 서양이 세계를 주도하지 않았을 거란 주장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렇게 행운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상태까지 온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이 운이 좋았다지만 다른 국가들에 똑같은 행운이 있었다고 해서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는 작가가 반대하는 서양인의 우월성에 대한 주제보다 서양의 성장이 우연의 연속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기 위해 14세기부터 현대까지의 세계사를 꼼꼼하게 파헤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 자체가 더 흥미롭다.
과거 500년의 세계 역사가 한눈에 보일 만큼 설명이 충분하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도 지루하지 않아 아주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역사나 스페인의 역사에 관한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다보니 16세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폭이 넓어지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편향적이 된 세계사의 이해가 균형을 찾은 듯 하다.
미국이 세계를 재패하는 현재 시대까지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아시아로 시선이 가게 된다. 불과 몇백년 전 세상의 중심이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무기를 앞세운 식민지 전쟁의 피해자로 낙오하고, 선진국들의 이기적이고 교묘한 술책으로 성장을 못하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나 영국의 성공적인 산업화가 교수의 말대로 우연이었든 말든, 앞으로 행운의 잭팟이 터질거면 아시아에서 터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