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모험 - 대항해시대의 탄생
대항해시대의 탄생은 16세기가 아닌 8세기 무슬림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부터 이야기를 한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첫 발을 디딘 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발전한 이슬람 문명의 발자취를 통해 대항해시대의 근본적인 배경지식을 깔고 시작한다.
매 챕터는 굵직한 사건을 서두에 언급하고 이야기를 다시 풀어내는 방식인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충실히하는 전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스페인 여행을 여러번 하여 익숙한 도시들의 이름이 반가웠고, 그 도시들의 흥망성쇠가 마치 운명처럼 펼쳐지는 점이 흥미롭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문명의 부흥은 도전적이고 용감함 자들이 이룬 결과이지만 결국 다시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운명같은 레파토리가 역사를 훑어보는 입장에서는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또 다른 역사의 주인공들.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기운은 대서양이라는 더 넓은 바다로 향하는, 그 당시 변방에 불과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옮겨진다. '대항해시대의 탄생'은 이런 흐름을 잘 잡은 당시 왕들의 판단과 시대를 잘 탄 모험가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끝이 결국 끝이 아닐거라 믿는 사람들 덕분에 이 두 나라는 바다를 무대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세계를 잠식한다.
콘비벤시아 (Convivencia). 관용과 상호 의존이 담긴 공존의 문명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이슬람 문명의 발전은 바로 이 열린 마음이 바탕이 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발전도 통합과 관용이 크게 작용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발전의 정점에 있던 두 나라는 유대인학살과 종교재판소, 순혈논쟁과 같은 배척과 탄압의 사회로 변질되면서 국운은 급격히 기운다.
대항해시대를 주름잡던 두 강대국은 이렇게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되었고, 불과 몇년만에 퇴보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개방을 지향해온 네덜란드와 영국같은 신흥 세력들이 부상하게 된다.
이 책이 끝까지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팩트를 나열하는게 아니라 시작과 끝이라는 큰 테마속에서 두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특히 그 당시 왕들의 판단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 설명에 충실하기 때문에 역사가 그렇게 흐를 수 밖에 없었던 점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보다보면 왕의 이름과 족보가 헷갈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지속적으로 인물 설명을 충분히 해주다보니 한명한명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리고 항해지도와 족보, 유적사진도 적절히 담겨있어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읽다보면 앞의 이야기를 잊어버리게 되는 많은 역사책과 달리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집중하며 당시 인물들과 역사적 결정들을 이해해기 쉽게, 게다가 아주 흥미롭게 풀어내어 참 마음에 들었다.
역사는 아무리 배워도 미래를 준비하는데 부족한 것 같다. 그라나다 왕국의 몰락과 이를 옆에서 지켜본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그들과 똑같은 쇠퇴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